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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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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개조)는 2005년 9월 21일에 발족한 일본의 내각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대신을 맡았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인 아베 신조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의식한 인선으로 "젊은 인물", "인기"를 중시하는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습 정치인과 매파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2세 내각", "고이즈미 호크스" 등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주요 각료로는 아소 다로, 가와구치 요리코, 다케나카 헤이조 등이 유임되었으며,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국토교통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고이즈미 내각은 개혁을 중시했으나, 세습 정치와 파벌 정치 논란, 각료들의 역사 인식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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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개조)
제1차 고이즈미 제2차 개조내각
내각 이름제1차 고이즈미 제2차 개조내각
대수87
수상 이름고이즈미 준이치로
성립 연도2003년
성립 월일9월 22일
종료 연도2003년
종료 월일11월 19일
여당자유민주당
공명당
보수신당
선거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해산2003년 10월 10일
매니페스토 해산, 구조개혁 해산
명단내각 명단
2003년 9월 22일
기타

2. 내각 구성 배경 및 특징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대응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아베 신조를 자민당 간사장에 임명하는 등,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의식한 '젊은 인물', '인기'를 중시하는 내각을 구성하였다. '관료의 말만 듣는다', '개혁을 방해한다'는 비난을 받았던 오기 지카게 대신 행정개혁 담당 대신이었던 이시하라 노부테루국토교통대신에 임명하여 '개혁 중시' 기조를 강조했다. 내각 개조 전 쟁점이 되었던 다케나카 헤이조, 가와구치 요리코 두 민간인 각료는 유임되었다.

2. 1. 세습 정치 및 파벌 정치 논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한 납치 사건에서 강경한 발언으로 일본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아베 신조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선거를 의식한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젊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이고자 했으나, 대부분 세습 의원이거나 강경파 의원이 중심이 되었으므로, ‘2세 내각’ 또는 ‘고이즈미 호크스(매파)’ 등의 지적도 받았다.

3. 주요 각료 명단

자유민주당자유민주당 총재총무대신아소 다로

중의원
자유민주당
(고노 그룹)재입각법무대신노자와 다이조참의원
자유민주당
(모리파)초입각외무대신가와구치 요리코민간유임재무대신타니가키 사다카즈
중의원
자유민주당
(코자토파)횡슬라이드문부과학대신가와무라 다케오중의원
자유민주당
(에토·카메이파)국립국회도서관 연락조정위원회 위원초입각후생노동대신사카구치 지카라중의원
공명당유임농림수산대신가메이 요시유키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파)유임경제산업대신나카가와 쇼이치
중의원
자유민주당
(에토·카메이파)국제박람회 담당재입각국토교통대신이시하라 노부테루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수도기능이전 담당
관광립국 담당횡슬라이드환경대신고이케 유리코중의원
자유민주당
(모리파)지구환경문제 담당초입각내각관방장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남녀공동참가)후쿠다 야스오중의원
자유민주당
(모리파)유임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청소년육성 및 저출산대책
식품안전)오노 기요코
참의원
자유민주당
(에토·카메이파)초입각방위청장관이시바 시게루중의원
자유민주당
(하시모토파)유임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개인정보보호
과학기술정책)모테기 도시미쓰중의원
자유민주당
(하시모토파)정보통신기술(IT) 담당초입각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경제재정정책)다케나카 헤이조민간유임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개혁
산업재생기구)카네코 카즈요시중의원
자유민주당
(호리우치파)행정개혁 담당
구조개혁특구·지역재생 담당초입각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이노우에 기이치중의원
보수신당사태대처법제 담당초입각



카네코 가즈요시 국무대신의 '구조개혁특구·지역재생 담당' 보직 사령은 2003년 10월 24일에 발령되었다.

3. 1. 주요 각료 평가

아베 신조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강경한 발언으로 일본 국민의 주목을 받아 자민당 간사장에 임명되었다. '행렬이 생기는 간사장'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보도되었으나, 민주당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이후 총리에 취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베 신조의 역사관 및 정치적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는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총리에 취임했다.

아소 다로는 총무대신에 취임했으며, 이후 총리에 취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소 다로의 역사관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는 민간인 각료로 유임되었다.

4. 내각에 대한 반응 및 평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에 의한 납치사건에서 강경한 발언으로 일본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아베 신조자민당의 간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선거를 의식한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젊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반면에, 대부분이 세습이거나 강경파 의원이 중심이 되었으므로, ‘2세 내각’이라거나 ‘고이즈미 호크스(매파)’ 등의 지적도 받았다.

‘관료의 말대로’라거나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을 받고 있던 오기 지카게를 대신하여 행정개혁 담당 대신이었던 이시하라 노부테루국토교통대신에 임명하는 등 ‘개혁 중시’를 강조한 내각이 되었다. 내각 개조 전에 쟁점이 된 다케나카 헤이조가와구치 요리코의 두 민간인 각료는 유임된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인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내각에서 아베 신조 간사장은 매스미디어 등에서 ‘행렬이 생기는 간사장’ 등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의 인기도 높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을 제압하지는 못하고,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약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158특별국회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제8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지만, 내각이 발족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점이나 각료 중에 낙선자가 거의 없었으므로, 각료는 전원이 유임하게 되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대응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아베 신조를 당 간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의식한 "젊은 인물", "인기"를 중시하는 내각이 되었다. 자민당 내에서 젊고 인기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세습", "매파"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2세 내각", "고이즈미 호크스" 등으로 조롱받았다.

"관료의 말만 듣는다", "개혁을 방해한다" 등 많은 비난을 받았던 오기가타 센케이를 대신하여 행정개혁 담당 대신이었던 이시하라 노부아키를 국토교통대신으로 이동시키는 등 "개혁 중시"를 강조한 내각이 되었다. 내각 개조 전에 쟁점이 되었던 가와구치 준코, 다케나카 헤이조 두 민간인 각료는 유임되었다.

'인기'를 중시하여 구성된 내각에서 간사장인 아베 신조는 매스컴 등에서 "줄 서는 간사장" 등으로 불리며 국민의 인기도 높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고, 이후 총선거에서 민주당의 약진을 허용했다. 제158회 임시국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제8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임명되었고, 거의 같은 인물들(전 閣僚 재임)로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이 발족했다.

이후 총리에 취임하는 아베 신조가 자민당 간사장, 후쿠다 야스오가 내각관방장관, 아소 다로가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고이즈미 이후를 아베, 후쿠다, 아소가 다투었고, 이후 총재에 취임한 다니가키 게이이치가 재무대신, 후쿠다 이후를 아소와 다툰 이시하라 노부아키(국토교통대신), 고이케 유리코(환경대신), 이시바 시게루(방위청장관) 등 고이즈미 총재 이후의 총재 선거 후보들이 한꺼번에 입각하여, 당 간사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5. 이후의 변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퇴임 이후, 이 내각 출신 인사들은 일본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다. 아베 신조는 자민당 간사장, 후쿠다 야스오는 내각관방장관, 아소 다로는 총무대신에 취임하며, 이 세 명이 고이즈미의 뒤를 이어 총리직을 두고 경쟁했다. 이후 총재에 취임한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재무대신을 역임했고, 이시하라 노부테루(국토교통대신), 고이케 유리코(환경대신), 이시바 시게루(방위청 장관) 등도 주요 정치인으로 성장하여 고이즈미 총재 이후의 총재 선거 후보로 거론되었다.

특히, 아베 신조는 매스컴에서 '행렬이 생기는 간사장'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민주당의 약진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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